[리츠안즈]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안즈른_전력_60분 / 33번째 주제 [소원] / 리츠 해석 주의 / 안즈 해석 주의 / 흐름 주의
W.포근
하품을 끝없이 내뱉으면서 주섬주섬 나갈 채비를 하던 리츠의 눈에 거실 한구석에 놓인 찢긴 달력의 면이 눈에 들어왔다. 크리스마스 날에 빨갛게 동그라미 되어있는 것이 저건 자신이 표시해놓은 12월의 달력이 맞았다. 아. 작은 감탄이 흘러나왔다. 눈치를 채고 보니 한 해가 지나가 있어서 리츠는 달력을 쳐다보며 멍하니 눈을 깜박거렸다. 해가 지나가고 날이 지나가는 게 리츠에게는 별 의미를 띄지 않은 지라 리츠는 잠시 달력의 년도 언저리를 손으로 살살 쓸었다. 엄지로 여러 번 끝의 숫자를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진정으로 해가 지나 갔구나를 느끼고서 그제 서야 리츠는 숫자를 놓아주었다. 놓아주고 나니 조금은 색다른 감이 있었다. 작년은 리츠에게 있어 조금. 아니 크게도 안에 자리 잡은 해 이기에 신기하게도 이런 걸 느끼는 걸지도 몰랐다. 아쉬움. 날이 지나간다는 아쉬움. 어렸을 적 이후로는 느끼지 못한 감정이 인제 와서야 스멀스멀 올라와서는 리츠의 얼굴을 묘하게 만들었다. 대충 휘적휘적 날이 가든 말든 자면 어느새 시간은 가 있고 밤이 찾아오고 날을 지내던. 그다지 지나가는 시간과 날들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 건지도 몰랐다. 전에는. 지금에 와서는. 뭐 어찌 되었든 해가 지나가서 잘 되었다 싶은 마음도 있었다. 보기 싫은 형이란 작자의 얼굴을 학교에서 보지 않아도 되니 그건 좀 괜찮을지도. 미약하게나마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던 리츠의 코트 주머니에서 작게 진동이 울렸다. 달력 앞에서 조금 오래 시간을 보낸 모양이었다. 느릿하게 나가도 화내진 않겠지만. 평소와 같이 웃어주겠지만. 안즈 혼자 추위에 떠는 모습은 싫었다. 솔직하게는 안즈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더 싫었다. 못 만난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지만, 유난히 겨울은 사람을 그립게 만들고는 하니까. 겨울의 바람은 추위는 사람의 품을 향기를 그립게 한다. 리츠는 그걸 잘 알았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서 작게 새어 나온 하품이 하얗게 파란 하늘 위로 올라갔다. 아직 채 밤이 되지 못한지라 푸름이 짙게도 하늘에 남아 있었다. 하늘색의 연못을 닮은 하늘보다는 짙푸른 바다를 닮은 저녁의 하늘이 더 보기엔 괜찮았다. 하늘에서 눈을 돌리고 리츠는 걸으며 한 손으로는 하품하는 입을 살짝 막고서 다른 한 손으로는 코트 주머니 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안즈에게 짧게 메세지를 보냈다. '가고 있어 안즈는?' 메세지를 다 보내고 나자 손이 차갑게 붉어진 것이 느껴져 손을 모아 호 하니 입김을 불었다. 겨울에는 코타츠에서 나오면 안 되는 것 같아. 그리 생각하면서도 리츠는 부지런하게 걸었다. 문득 걸으면서 리츠는 벌써 해가 바뀐 게 역시 싫은 거 같다고 마음을 바꿨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아이는 예상대로 리츠보다 먼저 약속 장소에 있었다. 이리저리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멍하니 서 있는 안즈는 약간 거리가 있었는데 리츠는 안즈에게 다가서는 걸 멈추고서 그 자리에 멈춰서 안즈를 바라보았다. 잠깐 정도는 시간이 멈춰도 되지 않을까 싶었던 순간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자신과 조금 닮아있는 모습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돌려 리츠를 발견하고 물빛 눈이 사르르 휘었다. 얼마나 먼저 있던 건지는 리츠로서는 알 길이 없었지만 하얀 볼 전체가 붉고 붉은 걸 보니 아마도 꽤 오래 서 있던 모양이었다. 추운 티 하나 내지 않고 반갑게 웃어주는 게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해서 리츠는 안즈를 꼭 끌어안으며 웅얼거렸다. 안즈가 오래 서 있던 추위로 인해 반응이 느리지 않았다면 들었을 웅얼거림은 미안해 안즈. 들었다면 무척이나 기뻐했을 얼굴이 예쁘게도 그려졌다. 리츠는 조금 오래 안즈를 그리 끌어안고 한참을 웅얼거렸다.
"새해 소원?"
"올해 처음 떨어지는 유성 이래 그 유성에 대고 소원을 비는 거야 새해 첫날은 리츠 사람이 많아서 싫어했을 테니까. 지금 유성에 대고 새해 소원을 같이 비는 거야. 게다가 보이는 유성에 대고 비는 편이 소원이 이뤄질 확률이 높잖아?"
그리 말하며 안즈는 장난스럽게 리츠를 향해 웃어 보이다 금세 다양한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이 반짝거리는 아래에서 새해의 소원. 새해는 이미 지나가 버린 지 오랜데. 들어주기나 할까? 신이란 건 항상 제멋대로이니까 간절하게 빌어 바란다고 한들 이미 늦었다고 안 들어줄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안즈는 별이 반짝거리는 밤을 보며 들떠 했다. 대체 왜? 소원이란 건 소망이란 건 바라고 원한다는 실체가 없는 허상이기에 실제로 빌어도 안 들어주는 게 당연했다. 리츠만 해도 그랬다. 매일 소원했고 매일 소망했다. 빛이 들기를. 어린 리츠는 수없이 소원했고 홀로 남겨지지 않기를 끝이 있는 기다림을 소망했다. 돌아온 결과는 끝없는 기다림 속에 지쳐버린 자신이었고 곁에는 그렇게 자신을 아껴주던 가족마저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혼자서 별이 지는 것도 해가 넘어가는 것도. 기억하고는 있지만, 소리도 색도 없었다. 오로지 흑백으로 남아버려 지직거리는 고장 난 무성영화의 비디오를 보는 듯했다. 말도 모르는 것처럼 침묵 속에서 어린 리츠는 가만히 잠을 잤다. 소원은 허울 좋은 껍데기 같은 것에 불과했다. 붉은 눈만큼이나 붉어진 눈가를 하고서. 리츠는 홀로 비웃어 보였다. 지금에 와서도 리츠는 소원을 빌지 않았다 미래를 생각해보는 것과 꿈꿔보는 것은 지대하게도 달랐다. 반짝거리는 밤 앞에서 리츠는 웃을 수가 없었다. 차마 밤을 바라보기가 어려워 고개를 내렸다. 어느 겨울 나라에 내리는 눈만큼이나 하얗게 시리던 리츠의 손에 따뜻한 온기가 퍼졌다. 리츠는 느릿하게 떨궜던 고개를 들어 옆을 보았다. 안즈는 리츠를 보고 있지 않았다. 안즈 그저 손만 잡았을 뿐이었고 눈은 여전히 밤하늘을 향해있었고 느릿하게 입이 움직였다.
“리츠 둘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뤄질 확률이 얼마나 커지는지 알아?“
“응?”
“무려 별의 숫자만큼 이야.”
그렇게 말하며 안즈는 리츠에게 눈을 돌려 시원스레 웃어 보였다.
“비는 소원 속에 서로가 있으면 더 높아진 데 나는 소원에 리츠가 있어.”
그러니 리츠의 소원은 절대로 이뤄질 거야. 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그냥 말뿐인데도 근거도 현실성도 아무것도 없는데도 잡아준 손이 따뜻해서인지 믿고 싶어지는 마법 같은 말이었다. 확실히 누군가와 같이 소원을 빈 적은 없었다. 혼자인 날들뿐이었으니 혼자 인 소원만 가득했던 오늘같이 별이 반짝거리던 어느 해. 어린 리츠는 소원을 빌었다. 어쩌면 혼자 빌었기에 신은 제멋대로이니까 지금에 와서야 늦게나마 소원을 들어 준걸지도 몰랐다. 현재 곁에는 따뜻한 온기가 제대로 손에 쥐어져 있었다. 제멋대로이니까. 안즈의 말대로 둘이 빌면 조금은 더 바람이 빠르게 이루어질지도 몰랐다. 안즈가 작게 탄성을 자아냈다. 여러 계열의 푸름이 어우러진 밤하늘 위로 유성이 내렸다. 리츠도 안즈도 잠시 서로를 놓고서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었다.
어린 시절 이후 처음으로 비는 소원에 리츠는 무엇을 담을까 고민했다. 이것저것 떠올랐지만, 리츠는 이내 곧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소원을 빌 수 있으면 이제 꿈도 꿀 수 있었다. 소원은 안즈와 나태하게 사는 것. 더 이상 혼자서 외롭지 않아도 괜찮은 거. 그저 폭신한 소파에 안즈가 앉으면 안즈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거나 느즈막한 오후에 테라스 테이블에서 서로 마주 보고 앉아 티타임을 즐기는 거. 그냥 매일 손잡고 걸을 수 있는 여유로운 밤이 있는 거. 지친 하루의 끝마다 서로 기대어 쉬는 거. 기대어 쉬면서 서로 이야기를 듣고 실없이 웃거나 위로하는 거. 그냥 안즈가. 네가 늘 있는 것.
"리츠는 무슨 소원 빌었어?"
먼저 소원 비는 걸 끝내고 리츠의 몇 발자국 뒤에서 안즈는 물었다. 리츠는 조심스럽게 모았던 두 손을 내리고서 슬쩍 고개를 돌렸다. 추위에 언 볼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딱히?"
특별한 게 없어. 그저 평범한 소원이었어. 동그랗게 눈을 떠오며 말하는 안즈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리츠는 앞서 걸으며 대충 그렇게 숨겼다. 지금 빈 소원이 리츠의 더 없을 오랜 소원이 될 예정이니까. 소원은 말로 꺼내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 효력을 잃는다고들 하니까. 소원이 이뤄지길 바라는 어리고 오래된 마음에서 리츠는 그렇게 말했다. 언젠가의 말로 안즈에게 전할 수 있을지도 혹은 안즈는 마법사 같으니까 알아차릴지도 몰라. 어떠한 형태로든 말이지. 안즈도 같은 형태의 미래를 꿈꿔주면 좋을 텐데. 거기까지 생각하다 리츠는 가던 걸음을 멈췄다. 안즈가 리츠보다 조금 더 앞서서도 리츠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질 않았다. 옆에서 걷는 소리가 들리질 않자 안즈는 멈춰서 고개를 뒤로 돌려 리츠를 보았다.
"리츠?"
"안즈는 무슨 소원 빌었어?"
리츠의 말에 안즈는 잠시 고민을 했다.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모양이었다. 리츠는 그저 평온한 얼굴로 안즈의 말을 기다렸다. 알지 못해도 괜찮았지만. 그냥 궁금했다.
"졸업한 뒤에도 리츠랑 함께하게 해주 세요?"
안즈는 멋쩍은 얼굴을 하며 얼굴을 붉혔다. 아. 그냥 저도 모르게 발이 먼저 나갔다. 반쯤만 몸을 돌려 자신을 보며 멋쩍게 웃는 안즈를 보니 다급하게도 발이 빨라져서 단숨에 뒤에서 꼭 끌어안고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있지 안즈."
"응."
이렇듯 당황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손을 자신의 머리 위로 올려 살살 쓸어주는 상냥함이 참 좋았다. 쓸어주는 손의 살랑거리는 감각. 나긋하게 울려오는 목소리. 얼굴을 작게 간질이는 갈색의 머리카락. 한 품에 들어오는 안김. 그냥 모든 게 다 좋았다. 살짝 떨어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리도 그리운지도 모르겠고. 놓고 싶지 않은 마음만은 가득해서 이리도 울 것 같았다. 실은 그보다도 같은 형태를 꿈꾸는 게 이리도 기뻐서 정말 저도 모르게 유성처럼 내릴 것 같았다. 안즈. 안즈. 안즈. 안즈. 몇 번이고 이름을 불러도 다정하게 말해주는 음성이. 지금 이 순간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끝없이 늘 옆에서 들렸으면 좋겠다고. 먼 훗날에서도 이렇게 상냥함을 가득 담아 나를 안아주기를. 내가 너를 안기를. 소원이 일상의 한 조각이 되어주기를.
"나는 안즈가 나태해지게 해달라고 빌었어. 아주 간절하게.“
나태한 나와 나태한 네가. 소원은.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당신과 남은 해를 시간을 생을 함께 사는 것.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이상한부분은 자주자주 수정하러 올 예정입니다 볼 때마다 틀려질 수도 있어요
*둘이서 빌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확률이 높아지고 비는 소원에 서로가 있으면
별이 수만큼이나 그 소원이 이루어질 확률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둘이 넘어가면 그 소원은 백프로 이뤄진다는거야?????
*소원을 혼자 빌면 이뤄지는 데 오래 걸린데요.
*안즈로 인하여 변해가는 리츠가 좋습니다
리츠도 미래를 꿈꾸는 게 참 좋아요 저는. 그 속에 안즈가 있다는 건 더 좋고
*소원의 유의어는 꿈인데 꿈의 유의어는 소망이고 소망의 유의어는 소원.
꿈도 소원도 결국 같은 맥락의 바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표현하는 문장만 다를 뿐. 소원 역시도 꿈이 되기도 꿈 역시도 소원이 되기도
*나태하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유성이 반짝이는 밤에.
소원을.
*나태해지게 해주세요.
*문의는 트위터(@pogeun_anzu)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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