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침대에 누워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기를 세 시간 째. 츠카사는 잠들지 못했다. 멍하니 그저 멍하니 천장을 올려보고 있으면 떠오르는 생각들에 츠카사는 실실 웃기도 하고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기도 하고 이불을 머리끝 까지 올리기도 했다가 다시 빼꼼 얼굴을 이불 밖으로 내밀고서 진지한 표정을 해 보이다가 금세 우울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서른 밤째 스오우 츠카사가 잠들기 전 반복하는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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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서른 번째 밤이었다. 잠을 못 이룬지 결심을 한 지도 딱 서른 번째 지난날 이었다. 매일 밤 조울증이라도 온 것 마냥 웃다가 우울해 하기를 반복하고 설렜다가 시무룩해지기를 반복하고 들뜬 가슴을 쓸어내리기 바쁜 밤이었다. 밤새 뒤척거리며 떨려 하기를 몇 번.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손에 고개를 묻고 들지 못하기를 몇 번. 손에 땀이 차올라 손수건으로 닦아내기를 몇 번. 생각만 하는데도 그렇게 떨렸다. 앞에 서면 굳어서 바보처럼 행동하기 일쑤였다.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어려워진다는 걸 알면서도 앞에 서면 그렇게 말이 나오질 않았다. 기껏 용기 내서 바쁜 사람을 불러놓고 엉뚱한 말만 하다가 끝내 서둘러 보내버리고 마는 그런 바보 같은 짓도 벌써 서른 번째였다.
결심하게 된 계기는 특별하게 없었다. 그냥 평소처럼 문득 스치듯 바라본 모습이 그렇게 사람을 봄같이 만들었다. 아직은 봄이 오기에 일러서 시린 바람이 잔뜩 뭉쳐있는 날이었는데 희한하게도 주변이 봄이 찾아온 듯이 그렇게 확 달아올랐다. 어느 여름의 물기 먹은 장미 같았나? 혹은 진하게 내린 홍차와 같았나? 얼굴이 그렇게 붉어져 있었다. 자각하고 나니 마음이 살랑 바람을 탄 듯 둥실 떠올라 부유했다. 가라앉을 줄 모르고 울렁거리며 손끝을 저리게 했다. 울렁거려 토라도 할 것 같았는데 그렇다기보다 좋은 기분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처음 푸른 하늘을 눈으로 마주했을 때 이런 느낌이었나. 예쁜 케이크를 입에 처음 넣은 순간이 그랬다. 붕 뜰 것도 같고 달았다. 입 안도 기분도 마음도 그렇게 달아서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 채 주저앉아서 방금 전의 모습을 여러 번 되감고 되감으며 그렇게 아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아니 좋아하고 있었구나. 푹 수그린 고개 가까이 심장 소리가 느릿하게 울렸다. 연하고 사랑스러운 벚꽃 같이 울렸다. 조심히 그러나 큰 잔상을 남기며. 고개를 돌린 바라본 창문 밖에서 눈이 소복하게 내렸다. 창가의 작은 틈에 나무의 위에 넓은 바닥에 한 송이 두 송이 내리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갔다. 소리도 없이 차 곡하게 조용하게 다가왔다. 밤 새워 이렇게 내린 눈송이처럼 눈치 채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쌓이다가 나 당신을 문득 그렇게 사랑하게 되었나 봐요.
마지막 눈일지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이제 오늘이 아니면 용기를 내기가 어려워질지도 몰랐다. 더 이상은 물러서도 보내버려서도. 안될 마음이었다. 쌓인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는 법이기에. 침대에 앉아 있던 츠카사는 조심히 일어섰다. 눈이 내리는 창을 보고 섰다. 아까 마구잡이로 헝클어트려 버린지라 부스스하게 올라왔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눈을 감고 조용하게 츠카사는 안즈를 떠올렸다. 예행연습이라 쳐도 상상만으로도 심장 소리가 크게 밖으로 튀어나올 듯 커져갔다. 손끝이 발끝이 떨리며 아릿하게 올라오며 땀이 차올라 몇 번이고 잠옷 바지에 손을 닦아내고 심호흡을 크게 했다. 원래 이렇게도 떨리고 설레고 아픈 것인지. 말을 하려는 순간은 어째서 마음이 무겁게도 가라앉다가 순식간에 크게 차올라 울어버리고 싶은 건가. 꾹꾹 눌러 츠카사는 안즈를 불렀다. 마주한 모습은 평소의 모습이랑 그리 다르지 않았는데 그게 무척이도 예쁘고 예뻐서 바로 눈앞에 없는 걸 아는데도 손을 뻗어서 손이라도 잡아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렇게도 떨리고 떨렸다. 입술이 바짝 마르고 목이 빠르게 탔다. 실제로는 목이 마른 것도 아닐 텐데 순간의 무거움이 그런 느낌을 주었다.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긴장과 설렘 속에 굳어버려서 아무 말도 뱉을 수가 없었다. 분명하게 이렇게도 말할 당신이 떠올랐다.
‘츠카사군?’
보통은 상냥하게 때로는 단단하게 어쩔 땐 부드럽게 애정을 담고 있는 목소리가 그렇게도 심장을 터질 것 같이 만들었다. 말에 걱정을 담고 있는지라 어서 괜찮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오래 그 목소리가 남길 바라서 여전하게도 입을 떼지 못했다. 겨우 내 용기 내서 마주한 동그랗게 떠 있는 눈이 모습이 채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좋았다. 그냥 나를 바라봐주는 게 그렇게도 벅차서 좋았다. 겨우 상상을 할 뿐인데도. 그렇게 좋았다. 누님 저는 괜찮습니다. ‘라고 떨려서 말을 꺼내면 그제야 걱정을 내려놓고 환하게 웃어 주실 텐데. 괜찮습니다. 까지는 어찌 어찌 채 입을 떼 말한다 하더라도 그 뒤 본론을 꺼내기에 숨이 그렇게 모자랐다.
좋아요. 좋아해요. 말을 뗀 지가 겨우 서른 밤. 벌써 서른 밤이었다. 아 이 정도면 충분한 마음이겠지 생각하면서도 막상 앞에 서버리면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차고 차버려서 넘쳐흘러 자꾸 속으로 그만하라고 외쳐도 그렇게 옷깃 사이로 피부 밖으로 새어 나왔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 주변을 가득 메워 어느샌가 보니 깊게도 잠겨 있었다. 사랑하는 마음이란 그렇게 정제할 수도 가늠할 수도 없었다. 서른 밤보다 더 오래된 마음이었을지도 몰랐다. 더 일찍 깨달았다 해도 달라질 건 없었는데 모르고 넘어간 두근거림이 모습이 말이 아쉽게 손 사이로 새어나갔다. 잡을 수 없는 순간에도 있는 당신이 그렇게나 그립고도 그리웠다.
돌아서 사라져갈 모습이 눈에 아팠다. 한 걸음 걸음 멀어질 때마다 아득해져 가는 기분을 느꼈다. 또 이렇게 물러서고 물러서 더는 볼 수 없게 되었을 때는 어쩌지. 거기까지 생각하자 무겁게 내려왔다. 설령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성공할 걸 각오하고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무엇 때문에 서른 밤이 지날 동안 망설였나 생각하면 이 마음이 당신께 부담이 될까. 당신이 좋아해달라고 한 적은 없었으니까. 내 멋대로 좋아한 마음이었기에. 커다래서 본인 스스로가 잠겨버릴 마음의 크기가 상냥한 당신도 어찌 못할 만큼 부담이 될까 그렇게도 밤마다 망설였다. 마음을 전하는 것 또한 나의 이기심이 아닐까. 그럴 바에 차라리 꾹꾹 눌러 담고 눌러 언제나의 관계로 그렇게 옆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그래도. 당신의 눈에 가득 찬 내가 당신의 목소리로 듣는 달콤하기 그지없어 아린 애정의 말이 간절했다. 한 번의 꿈이라도 좋으니. 순간의 착각이라도 좋으니. 좋다는 사랑의 말이 당신의 마음이 가지고 싶었다. 멀어져가는 발걸음을 따라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떨림이 멈추지 않는 손으로 당신의 손을 꼭 잡았다. 온기가 느껴지는 따뜻함이 가득한 손이었다.
“누님 좋아해요.”
겨우 네 글자 뱉기까지 오래도록 걸린다. 서른 밤이 되어서야 상상으로나마 전하는 고백이었다. 어떤 표정을 할지 어떤 말을 할지 어떤 모습을 할지 아무것도 몰랐다.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는 힘껏 예쁘게 눈을 접어 좋아한다 말을 해보았다. 뱉지 못한 마음이 안에서 눌려 훨씬 커질 줄 알았는데 뱉고 나서는 막을 수 없으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부풀어 크기를 늘려나갔다. 좋아해요. 정말, 정말 좋아해요. 제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고백이란 건은 단 줄 알았더니 의외로 참 쓰고 아팠다. 애달프게 울리는 마음에 접어둔 눈 사이로 눈 녹은 잔여물이 같은 것이 반짝였다. 마음이 넘치다 못해 뚝뚝 미련스럽게 흘러내리는구나 싶었다.
겨울인지 모를 정도로 홧홧해진 주변의 공기 사이에서 츠카사는 조심스레 눈을 떠 창문을 바라보았다. 방울이 반짝이며 바닥으로 톡 하니 떨어졌다. 여전히 소복하게 내리는 눈은 꽤 쌓여있어 밟으면 자국이 남을 정도가 되었다. 츠카사는 한참을 쌓인 눈을 바라보다 잠옷 소매를 당겨 두 눈가를 꾹꾹 눌렀다. 눈이 붉어지지 않게 오랫동안 천장을 올려다보며 소매로 눈가를 눌렀다. 누르는 소매가 따뜻하게 젖어갔다. 예행연습에 불과한 고백에 이렇게 아팠다. 아마 내일에 가선 이것보다 더 추하고 못나게 말할지도 보일지도 몰랐지만. 겨우 입 밖으로 내고 후련하기도 답답해지기도 했다. 앞에서 한 것도 아닌데.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순간의 당신께 말하는 진심이었다. 상상일 뿐이지만. 누구나가 다 고백하면 이렇게 아픈지 우는 건지 물어볼 이도 물어볼 자신도 없었다. 다른 이에게 말하는 순간 들켜버릴 커다란 마음이 부끄러웠고. 처음의 마음이었고 처음의 고백이 될 테니까. 경험이 없는 조언이 없는 사랑은 고백은 이렇게나 어리고 서툴며 애정 어렸다.
뛰는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고 약간의 안정을 찾을 때가 되어서야 츠카사는 두 눈을 누르던 손을 뗐다. 아직 물기 어린 눈이 보이긴 했지만 틀어막아 놨으니 괜찮았다. 한껏 따뜻해졌던 주변의 공기도 이제는 차게 식었다. 이제야 숨을 겨우 쉬었다. 츠카사는 몇 번을 더 작게 숨을 쉬고는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새벽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이제 잠자리에 들지 않으면 일어나기 꽤 힘들지도 몰랐다. 츠카사는 폰을 내려놓고 식어버린 침대로 들어갔다. 침대의 찬 공기가 몸을 타고 올라 몸을 오스스 떨렸다. 츠카사는 이불을 목 끝까지 덮다 내렸다 눈을 감았다 떴다 를 반복하다 한참 동안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다 심장 부근에 손을 올려 꾹 움켜쥐었다. 서른한 번 째의 밤에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설렘에 가득 차 잠들기를. 츠카사는 작게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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