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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카논 2 N

[레이안즈] 시계의 밑에 흘려진 피에 기도를



Sereno - 조각인형




[레이안즈] 시계의 밑에 흘려진 피에 기도를


*안즈른 전력 60분 / 26번째 주제 [시계] / 시대관 주의 / 레이 해석 주의 / 안즈 해석 주의 / 흐름 주의




W.포근





아이는 가만히 서서 시계를 바라보았다. 보기만 해도 경건해지는 느낌을 주는 시계는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는 시계를 바라보았고 한 여자가 그를 이상하게 여겨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시계를 보고 있니?”

 

아이는 짐짓 슬픈 얼굴로 답했다.

 

시계가 슬프고 쓸쓸해 보여서 떠날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집에 가지 않으면 부모님이 슬퍼하실 거야.”

 

아이는 그리 말하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른 질문을 던졌다.

 

시계가 왜 쓸쓸한지 알고 계시나요?”

 

아이의 말에 여자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는 여자의 옆모습을 눈에 새겼다. 그 모습은 시계의 슬픔과 닮아있다고 아이는 생각했다. 시계의 작은 바늘이 5바퀴쯤 돌았을 때 여자는 아이의 손을 잡고서 말했다. 눈은 여전히 시계를 향해 있었다.

 

알고 싶은 거니?”

.”

저기 교회로 가면 시계탑이 한눈에 들어온단다.”

 

여자는 그 이상 말을 잇지 않았고 아이도 더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은 얼마 걸리지 않는 교회의 문을 열었다. 교회는 조용했고 사람의 흔적 또한 없었다. 아이와 여자는 길게 늘어진 의자 들 가운데 문과 가장 가까운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반쯤 열어둔 문 사이로 시계탑이 보였고 아이의 발이 흔들거리기 시작함에 따라 여자는 입을 열었다.

 



-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적에 마을에는 모두의 사랑을 받는 한 여자가 있었다. 여자의 이름을 아무도 몰랐지만. 어른, 아이 남녀노소 누구라 할 것 없이 다들 여자를 안즈라 불렀기에. 그도 똑같이 여자를 안즈라고 불렀다. 안즈는 상냥했다. 마을 누구에게라도 안즈에 관해 물어보면 그리 답할 게 당연했다. 안즈는 다정했다. 아이들은 모두 안즈를 좋아하고 따랐다. 길을 걷다가 안즈가 보이기라도 하면 놀던 것도 버려두고 안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 바빴다. 여러 일을 도와주느라 바쁜 와중에도 안즈는 아이들을 한 번씩 안아주며 발걸음을 움직였다. 아이들은 안즈가 안아준 후에는 안즈에게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졸졸 뒤를 따라다녔다. 아마 당시 마을의 모든 아이의 첫사랑이 안즈였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렇듯 안즈는 마을 사람들을 사랑했고 그들 또한 안즈를 사랑했지만. 안즈가 어디서 왔고 왜 마을에 있는지 나이는 얼마나 되는지 가족은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안즈가 자신들에게 무언가를 털어놓고 알려주기를 기다렸지만 안즈는 그저 평소와 같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중 사랑에 빠진 어린 소년이 용기를 내 물었다. 사랑이란 사람을 겁 없게 만들었고 사소한 것이라도 알고 싶게 만들었으니. 그렇게 신이 감정을 만지셨으니.

 

, , 안즈! 안즈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소년의 물음에 안즈는 하던 뜨개질을 멈추었다. 얼굴이 빨개진 채로 눈을 꼭 감고 말하던 어린 소년은 아무 말이 없자 실눈을 떠 안즈를 슬쩍 엿보았다. 안즈는 자신의 손을 꼭 아주 꼭 쥐고 있었다. 손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안즈?’

‘....남편이 있었어.’

 

오랜 침묵 끝에 안즈가 뱉은 말은 딱 한 마디였다. 꽤나 충격적인 말이었지만 어린 소년은 자신의 사랑에게 남편이 있었다는 사실보다 안즈의 모습이 더 충격적이었다. 안즈는 그 한마디 말을 뱉으면서 괴로워했고 슬퍼했고 절망스러워했으며 이내 몸을 떨며 눈을 감고서 말을 했다. 상냥한 미소만 보던 어린 소년에게 그 표정은 잊을 수 없을 만큼 뇌리에 박혔다. 대체 안즈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안즈는 왜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이 마을에 오기 전까지 어떤 사람이었을까. 남편이란 사람은 누구였을까. 수많은 의문이 피어올랐지만 단 한 개도 알 수가 없었다. 어린 소년은 잠자리에 들면서 자신의 사랑이 생각보다 더 크고 커질 것을 조금 예감했다. 다음날 마을에 왕궁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매년 하는 조사를 하러 내려왔다고 그들은 말했으나 시기가 일렀고 무장한 병사가 무척이나 많았으며 왕궁 사람들은 무언가 비장한 표정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기이하게 여기면서도 그저 여느 때와 같겠지 하며 그냥 넘겼고 아이들은 무장한 병사들을 신기해하며 졸졸 따라다녔다. 어린 소년은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끼며 안즈의 집으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마을이 시끄러운 시점부터 안즈를 거리에서 볼 수가 없었기에. 마을의 깊숙한 끄트머리에 있는 집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았고 가는 길이 어두웠으며 찾아오는 이도 드물었다. 굳이 안즈를 보러 찾아가지 않아도 안즈는 마을 거리에 있었으니까. 어린 소년은 매일 찾아갔지만. 익숙한 문에 어린 소년은 문을 똑똑 두드렸다. 고요했다.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요 하는 소리가 들렸을 시점이 분명한데 안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나질 않았다.

 

안즈 집에 있어?’

 

소년은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리며 안즈를 불렀다. 여전히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고 소년은 이를 정말 이상하게 여기며 문을 살짝 밀었고 문은 쉽게도 열렸다. 집은 텅 비어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쓸쓸함만이 소년을 맞이했다. 어린 소년이 그렇게 텅 빈 집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을 무렵 마을의 광장에서 큰 소리가 났다. 울음과 비명이 한데 섞여 절망적인 소리를 만들어냈고 이윽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소년은 마을로 달려갔다. 가면서 수없이 뒤를 돌아보았지만 어찌 되었든 소년은 마음을 꼭 잡으며 마을을 향해서 달렸다. 마을에 안 좋은 일 속에 분명 안즈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마을의 광장의 도착한 소년은 일련의 과정을 그저 눈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마을의 곳곳은 불에 타고 있었고 아이들은 울고 있었다. 이제 막 광장의 시계탑에서 12시의 종을 울려댔고 무심한 병사의 칼에서 어른의 목이 떨어졌다. 안즈는 비명을 질렀다. 처절하게 괴롭게 악을 썼다. 그만하라고 자기가 잘못했다고. 그리 말하며 울었다. 또 한 명의 목이 떨어졌고 시계는 더는 시간을 보여줄 수 없었다. 처절함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 시계는 빨갛고 검었다. 목이 하나씩 떨어질 때마다 시계에는 새로운 피에 물들었다. 똑딱거리는 소리에 맞춰 피가 뚝 뚝 떨어졌다. 광장은 하나의 울음소리 말고는 고요했다. 소년은 소리 없이 울었다. 마을을 지킬 수 없는 약한 자신이 못나서 울었고 자신의 사랑이 저리 슬퍼함에도 그 앞에 나설 수 없는 비참함에 울었으며 모든 것을 잃은 절망에 울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시계탑의 밑에 피 웅덩이가 만들어질 즘 울음만 남은 광장에 뚜렷한 발걸음이 울렸다. 발걸음은 고귀하고 우아했다. 그 발걸음이 지날 때마다 병사들은 무릎을 꿇었고 발걸음은 눈물을 흘리는 안즈의 앞에 멈췄다.

 

안즈.’

 

목소리가 애틋하고 달콤했다. 안즈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는 개의치 않고 주저앉은 안즈를 일으켰다.

 

오랜만에 보는 건데 얼굴을 보여주면 좋겠네만.’

‘.......레이씨.’

 

한참의 침묵 끝에 나온 이름에 레이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 미소가 얼굴을 붉힐 만큼 매혹적이었건만 안즈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와 닿은 손도 끔찍하다는 듯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레이가 쓰게 웃었다.

 

이런 데 있었구먼. 찾느라 애 좀 먹었네.’

안 죽고 계셨네요. 죽으셨으면 좋았을 텐데.’

꽤 아팠네만.’

전혀 죄송하지 않아요. 미안하지도 않아요. 죽었으면 해서 찔렀는데 지독하게 또 살아계시네요.’

 

말 그대로 안즈의 목소리에는 미안함이 묻어있지 않았다. 질린다는 투로 그리 말했다. 상처받으라는 듯이 일부러 더 그리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레이는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 손으로 안즈의 턱을 잡고 자신에게로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붉은 눈은 욕망에 번들거렸다.

 

안즈.’

부르지 마요.’

 

단호하게 치를 떨며 안즈는 그 눈을 보며 말했다.

 

그 입으로 제 이름 부르지 마요. 끔찍하니까. 그 사람처럼 다정하게 안즈라고 부르지 말란 말이야!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 사람을 조금이라도 불쌍히 여긴다면 당신은 나를 찾아서도 내 이름을 불러서도 안 됐어!’

 

마지막에 와서는 발악하듯 소리를 지르고서 안즈는 무너졌다. 무너지는 그 순간에도 레이는 안즈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안즈의 귓가에 다정하게 속삭였다.

 

그 어떤 것을 희생하더라도 자네를 놓을 생각이 없다네.’

 

끝에 달콤하게도 사랑을 속삭였지만. 그 사랑은 닿을 일 없이 폐허가 된 허공으로 흩어졌다. 시계의 똑딱 소리와 함께 피가 떨어졌다.

 



-

 


안즈는 어떻게 됐어요?”

 

아이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여자에게 물었다.

 

글쎄.”

 

여자의 눈은 텅 빈 시계탑 앞을 향해 있었다. 마치 바로 밑에 피라도 고여 있다는 듯이 괴로운 표정으로. 아이도 여자를 따라 시계탑을 바라보았다. 아이의 눈에는 피가 보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시계는 슬퍼 보였다. 아이는 작게 손을 모아 기도를 했다.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시계를 위해서.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여자는 그런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누나는 안 해요?”

나는 할 자격이 없으니까.”

 

여자는 그리 말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갈 시간이라는 듯이. 아이는 여자의 말이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물으면 여자가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에. 아이는 질문 보다는 여자의 손을 꼭 잡았다.

 

울지 마요 아직 포기하면 슬프니까요.”

응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야.”

 

여자의 말에 아이는 해맑게 웃어 보였다. 여자는 아이의 웃음에 만난 후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상냥하고 다정하게. 말 그대로의 미소였다.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서 먼저 교회를 나섰다. 아이는 가만히 서서 여자의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뒷모습은 무척 가녀렸지만 강해 보였다. 아이는 여자의 뒷모습에 작게 손을 흔들었다.

 

잘 가요 안즈.”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이상한부분은 자주자주 수정하러 올 예정입니다 볼 때마다 틀려질 수도 있어요


*레이 할배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진짜에요...


*시계랑 일도 상관없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무엇일까요...


*에이치님이 나왔어도 잘 어울렸을 (읍읍


*점점 못된것만 늘어가는 느낌입니다.


*행복해지기로 하자 안즈야.


*문의는 트위터(@pogeun_anzu)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