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River (티파니에서 아침을 OST)
[리츠안즈] 어찌되었든 꽃집청년은 게을렀다
*꽃집 앞에서 우는 안즈와 그런 안즈를 지켜보는 리츠 이야기 . 리츠 해석 주의 . 안즈 해석 주의
W.포근
밤에도 낮처럼 활동할 수 있다니 참 좋은 세상이야. 문득 리츠는 카운터 책상에 엎드려 그렇게 생각했다. 불과 몇 백년 전만 하더라도 밤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돌아다니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몇몇 가지의 상황을 예외로 두고서라도 달빛이 비치는 밤거리에서는 사람을 잘 찾아볼 수 없었다. 기껏해야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술꾼들이나 예삿일들로 돌아다니는 사람을 가끔씩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밤에 활동하는 자신으로서는 조금 섭섭하기도 한 차별이기도 했었다. 밤도 낮도 똑같이 찾아오고 흘러가는 시간인데 한 쪽에만 치우쳐서는 떠들썩하다는 게 몹시도 거슬렸다. 가끔씩은 바꿔서 낮에 잠들고 밤에 반짝거리면 안 되는 걸까. 전부터 신은 공평하지 않다고 늘 느꼈지만 삶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부분에서도 신은 더럽게 낮을 편애했다. 그래도 요즘 세상은 전과 달리 많이 달라져서 조금 정도는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다. 여전히 신이 공평하지 않는 건 둘로 미뤄두고 말이다. 번화가의 안쪽에 위치해 있다 보니 주변이 축제의 밤처럼 늘 떠들썩했다. 낮처럼 거리에 사람이 돌아다니고 웃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하고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기도 하고 마치 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이 그렇게 소란스럽다. 본디 시끄러운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는 기분 좋은 소음이라고 리츠는 생각했다. 이렇게 한참을 시끄럽다가 조금 더 깊은 밤이 찾아오면 언제나의 밤과 같다. 늘 리츠가 눈에 담아냈던 조용하고 고요한 달과 아주 어린별을 가두 담아 빛나게 한 듯한 가로등만이 잠들지 못하는 자들의 길을 밝혀주는 밤. 떠들썩한 밤을 듣는 것도 고요한 밤을 바라보는 것도 꽤 괜찮았다. 그날도 그랬다 여느 때와 같이 소란스러운 시간이 지나가고 순식간에 고요해진 밤을 바라보던 중이었다. 머릿속으로는 좀 있다 뭐라도 먹을까나 하며 멍을 때리고 있던 찰나 바깥에 놓여 있는 꽃들 앞에서 웅크린 하얀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뭐지? 환각? 아니 사람인가. 종종 이런 일이 있곤 했다 술을 몸을 채 가누지 못할 만큼 진탕 마셔서는 꽃 위에다가 무지개를 토해놓는 진상의 종자들이 말이다. 이런 귀찮은 일에는 직접 나서지 않는 게 좋다. 리츠는 익숙하게도 핸드폰을 들어 112를 눌렀다. 통화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하얀 물체의 인간이 울음을 터트렸다. 리츠는 전화해야 하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우는 것을 쳐다보았다. 잘도 운다 싶었다. 사탕을 뺏긴 어린아이인 마냥. 엉엉. 뭐가 그리 서러운지는 몰라도 말이다. 리츠는 우는 여자를 보다 아직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한 핸드폰을 보다 한숨을 폭 쉬고는 폰을 다시 내려놓고 휴지를 꺼내 들고서 우는 취객에게 다가갔다. 다가가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뭔가 마군에게 옮아진 듯한 느낌이야. 내버려 둘 수가 없는 건 마군이지 내가 아닌데 말이지. 가까이 다가가 같이 쪼그리고 앉아서 보니 더 가관이었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으로 울고 있는 것 치고는 옷도 물건도 잘 차려입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우는지는 몰랐지만 말이다. 그것도 굳이 꽃집의 수국을 보면서. 아 간만에 색이 더 예쁘게 잘 키운 건데. 눈물방울에 똑똑 흔들리는 수국을 보며 한 생각이었다. 옆에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숨이 나올 뻔 한건 봐줄만 했다. 옆에 여자 손님도 리츠가 옆에 있는지도 모르고 울기만 했으니 말이다. 슬슬 말을 걸어야 했다. 마시다 둔 탄산음료가 김이 다 빠질 때가 됐던 것 같다.
“저기요 손님.”
손가락으로 손등을 쿡쿡 눌렀다. 마치 고양이가 발바닥으로 주인을 부르듯 한 모양새 같이 보이긴 했다. 그제야 옆으로 고개를 돌린 손님은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휴지를 건네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일단은 울고 있으니깐 리츠로서도 마음이 조금 짠하게 느껴지긴 했다. 간간히 심야에 보는 드라마에 나오는 버림받은 여자주인공 모양새를 하고 있었으니. 그리 잠깐 고민한 사이에 여자 손님은 대뜸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휴지를 건네는 손이 무색할 만큼 많이도 크게도 울기 시작했다. 지금이 제일 당황스러웠다. 리츠는 조금 전까지의 자신의 행동 중 어떤 것이 잘못됐는가를 되짚었지만, 딱히 이 사람을 울릴 만한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 손님은 리츠를 보며 서럽게 아주 서럽게 울었다. 순간 아주 조금 후회되는 게 있었다. 진작에 우는 사람 좀 달래 볼 걸 하는. 살아가면서 누구를 달랠 일이라고는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한 적이 없어서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 지금의 한숨이 절로 나오는 순간을 만들어 냈다. 조용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으면 어떤 상황에도 대처 할 수 있는 넓은 AT필드가 필요한 법이었다. 전에 마군이 여동생을 어떻게 달랬더라. 안아서 토닥토닥? 초면인 사람에게 해도 될지가 의문인 부분이다. 머리를 쓰담 쓰담 하는 방법도 있었던가. 살짝 긴장이 됐다. 누군가에게 온기를 나눠준다는 건 묘한 기분이 드는 일이었다. 리츠를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 여자 손님의 머리에 올려 고양이를 만지듯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며칠 전 처음 만난 갈색 고양이도 울고 있었을까 그런 궁금함이 갑자기 들었다. 쓰다듬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울음소리는 밤을 닮아 조금씩 울림이 고요해져 갔다. 아직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꽃 안에도 있는데 들어가서 보실래요?”
문득 입에서 나온 말이 그랬다. 가장 알맞은 말 같아서 무언가를 팔겠다거나 그런 것보단 침착하게 진정할 시간이 필요해 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꽃집 앞에서 운 건 좋은 핑계였다. 꽃을 사러 왔다가 무언가가 떠올라서 울었다던 좋은 핑계. 손을 거두고서 여자 손님에게 휴지를 건네고 먼저 가게로 들어가면서 생각한 건 따라놓은 음료가 평범한 설탕물이 되어버린 게 좀 아까웠다. 순전히 자신의 편의로 들여놓은 카운터 앞의 소파에 손님을 안내하고 물을 먼저 끓였다. 보글보글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 가득했는데 그게 그렇게 불편한 기분은 아니었다. 몇 분의 시간이 지나고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몇 번을 거치고 홍차를 머그잔에 따랐다. 커피가 아닌지라 괜찮아할지는 모르겠지만 울고 난 후에는 따뜻한 무언가가 필요할 것 같았다. 막상 들고 가려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손님을 보니 홍차를 건네주는 건 조금 난이도가 있어보였다. 정말이지 옆에 있다 보니 성향이 닮아버린 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시던 탄산음료 단종만 안 되게 해주세요. 유례 없는 친절을 베푸는 리츠의 작은 소망이었다. 가까이에서 내려다보니 휴지를 꼭 쥐고서 간간히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보고 있자니 그냥 조용하게 두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그냥 손님의 앞에 쪼그려 다가가 손을 잡아서 컵을 쥐여주었다. 갑자기 닿은 온기에 놀라 고개를 들어 리츠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괜히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어쩐지 또 자신의 얼굴을 보며 크게 울어버릴지도 몰라서 그저 한 건 두 손에 꼭 머그컵을 쥐어 준 것 뿐이었다.
머그잔을 꼭 잡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리츠는 바닥에 놓은 자신의 컵을 들고서 일어나 한 모금 마셨다. 노곤해지는 따뜻함이었다. 리츠는 잠시 서서 몇 번 홀짝이다가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가게 안쪽에 있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매일 치는 게 일과 이기도 했지만, 문득 예전의 기억이 났다. 예기치 않게도 마오 없이 마오의 여동생과 단둘이 남아 어쩔 줄 몰라 하다 결국 울려버렸던 어린 기억이었다. 물론 지금과 같이 누군가를 달래거나 해본 적이 없던 리츠는 매우 당황해하다가 무작정 피아노를 쳤다. 울지 말기를 하는 바람으로 자신 아는 피아노곡 중 가장 예쁜 멜로디만을 골라서 울음소리가 멈출 때까지 피아노를 쳤다. 얼마나 쳤을까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리츠는 그대로 마오가 올 때까지 잔잔한 피아노를 이어갔었다. 아이가 아닌 어른이지만 자신이 잘 아는 잘 할 수 있는 눈물을 멈추는 방법은 이것 밖에 없었다. 이름 모를 손님에게 보내는 밤의 위로였다. 건반 위에 손을 올리며 리츠는 누군가를 위해 피아노를 치는 건 오랜만이라고 생각했다.
색이 바래고 약간의 담배 냄새가 날 것 같은 옛날의 느낌이 있다. 종종 어떤 영화도 그랬다. 매캐하게 느껴지기보다 그리움이 물씬 나는. 별 것 아닌데도 쉽게 아름답게 바라봐지는 것들. 리츠가 그 영화를 기억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지금 순간이 좀 그런 기억이 될 것 같았다. 아주 오래된 영화에 종종 나오는 우연의 연속 같은 일 들이여서 쉽게 친절을 베풀고 다정하게 대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아름답게 보여서. 피아노를 치는 지금도 듣고 있을지 차를 마시고 있을지 모를 손님도 필름 어딘가에 찍혀 과거의 영화관 어딘가에 남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간만에 관객이 생긴 새벽의 연주회는 꽤 오래도록 이어져 갔다.
한참을 건반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던 리츠는 잠시 손을 멈췄다. 눈물이 똑 떨어지는 소리도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의자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보니 손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소파 옆의 꽃을 정리하는 테이블 위에 컵과 함께 낯선 종이가 한 장 있었다. 돌아 간 걸까? 하면서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면서 리츠는 종이를 집어 들었다. 종이에는 검은색 펜으로 또박또박한 메모가 쓰여 있었다.
[꽃은 내일 다시 와서 사겠습니다. 피아노 연주 좋았어요.]
리츠는 한참을 메모를 쳐다보다 곱게 접어서 펜을 들어 수국 이라고 적어 놓고 카운터 위에 올려놓고서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밀려놓은 일이 산더미였다. 마오가 오면 잔소리를 할 게 분명했다. 리츠는 간만에 예정 없던 일을 열심히 한다는 걸 체험했다. 바쁘게 움직이면서 다음부터는 오늘의 운세를 꼭 확인하고 밤에 가게를 열기로 다짐했다. 분명 오늘의 운세는 매우 나쁘지 않았을까를 리츠는 의심했다. 대강의 일이 끝나고서 리츠는 수국 한 개를 들어 카운터 앞에 올려놓고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카운터 앞에 두었던 메모를 들어 그 사이에 조심히 꽂아 넣었다. 실은 사러 오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았다. 체면치레의 말이 딱 맞았을 거다. 그런데도 굳이 수고스럽게 하나를 빼놓고 기다림을 자처하는 건 나쁘진 않은 결말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끝은 여운을 주어야 하니까. 이것까지 하고 나니 밖에서 조금씩 소란스러움이 몰려왔다. 슬슬 상점가가 일어날 준비를 할 시간이었다. 리츠는 가볍게 기지개를 켜고서 옆에 걸어놨던 담요를 뒤집어쓰고 카운터에 엎드렸다. 피곤함이 금세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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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 리츠! 어이 리츠! 일어나!”
“....으음...마...군 깨우지마.”
“적어도 위로 올라가서 집에 가서 자!”
“사장을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 아르바이트생은 마군 밖에 없을 거야.”
담요로 몸을 감싸고서 덜 떠진 눈으로 리츠는 마오에게 삐죽거렸다. 물론 평소와 같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들에 불과했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카운터에서 자고 있지를 안나 게다가 오늘따라 깨워도 안 일어나고.”
“....우으..너무 그렇게 몰아치지 마 나 어제 최고로 착한 일 했거든.”
“착한 일이라니?”
“마군을 닮아가고 있나 보지 오지랖이 넓어지고 친절과 자애로움이 늘어나고 있나 봐.”
“또 알 수 없는 소리를.”
“자러 갈거야아..”
“그래그래 얼른 자러 올라가.”
마오의 훠이훠이 손짓을 마지막으로 리츠는 담요를 꼭 부여잡고 하품을 하며 뒤쪽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면서 오늘의 운세 방송 시작시간이 된 걸 깨달았지만 다시 내려가 시청하기엔 너무 귀찮았다. 다음에 챙겨보면 되지. 올라가는 내내 하품이 여러 번 새어나왔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이상한부분은 자주자주 수정하러 올 예정입니다 볼 때마다 틀려질 수도 있어요
*꽃집..꽃집..꽃집
*(추후에 여유가 되면 추가 될 예정인 후일담.)
*문의는 트위터(@pogeun_anzu)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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