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없이도 해가는 망상 속에서 그런 일들이 있었다. 작은 의문에서 시작된 망상은 여러 갈래로 퍼져서 가지를 치 고치다가 여러 열매를 맺었다. 그 중 자꾸 눈이 가는 망상의 열매가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네가 있었다. 음이 들렸다. 목소리가 들렸고. 말이. 말이라고 하는 가사가. 들려왔다. 들리기는 들리는데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사실 보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그래도 이상했다. 조금 그리웠다고 느끼는 게 맞았다. 들리는 목소리는 평소의 너처럼 상냥하고도 느긋했는데 그에 따라오는 미소라던가 보이는 게 없어서. 라디오를 듣는 것도 같았다. 편지를 읽어주는 거 같기도 했다. 라디오로 편지를 보냈나 봐. 네가 나에게. 어째서 보냈을까도 생각해봤지만, 더 다른 길로 빠질 걸 알고 있었기에 그냥 듣고 있기로 했다. 귀담아듣고 싶었다. 눈을 감고 있는 건 망상과 상상의 폭을 넓혀주지만, 이때는 왠지 TV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라디오보다 TV가 보고 싶던 건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망상의 폭이 조금 줄더라도 반듯한 모습으로 또박또박 읽고 있는 모습을 눈에 안고 싶었다. 동글동글 뜨고 있다가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웃어 보였다. 문득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네가 들려주는 편지가 듣고 싶었다. 네게 편지를 들려주고 싶었다.
- 우주에서 보내는 편지
“세나! 나루! 릿츠! 스오! 편지를 쓰자!”
“하아?! 갑자기 와서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짓 걸이는 거야? 왕님 정말 머리가 돈 거야?! 지금 우리가 뭐해야하는지는 알고는 있는 거지?!”
“후아아..후.. 셋짱 시끄럽구...좀 조용히 해줄래….”
“리츠선배! 지금 주무실 때가 아닙니다!”
“이즈미짱도 츠카사짱도 조금 진정해? 왕님 갑자기 편지를 쓰자고 하면 곤란한데 우리 일단 라이브 연습하러 모였고 말이지 근데 갑자기 왠 편지?”
“편지를 쓰는 것뿐이잖아? 그렇게 예민하게 굴지 말라구 세나 뭐 편지라고는 했지만, 편지가 아니니까 일단 듣는 편지니까?”
장난스럽게도 웃으며 레오는 말을 뱉었다. 주름 걱정도 잊고 한껏 나 불만이오 라고를 가득 안고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세나의 얼굴이 뱉어내는 말에 따라 서서히 원래의 표정대로 돌아왔다.
“작사라고 처음부터 말했으면 좀 좋잖아 왕님.”
“편지라고 세나.”
“아 뭐 그건 넘기고 왜 다 쓰자고 하는 건데?”
“그냥 왕의 변덕이야~♪”
“흐음….왕님 갑자기 작사라면 즐겁기야 하지만 곤란한걸 츠카사짱도 나도 리츠짱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니까.”
“너희들 이때까지 뭘 들은 거야 작사가 아니라 편지라고 편지~ 대상은 뭐 아무에게나 괜찮아! 우주인에게도 써도 괜찮다고 기한은 딱히 없으니까 적당하게 써서 안즈한테 전해줘!”
그렇게 폭탄을 하나 던져놓고 레오는 스튜디오를 나섰다. 나서는 걸음에서 콧노래 들렸다. 딱히 나이츠에게 맡길 일은 전혀 아니지만, 이왕 일은 크게 하는 게 좋다. 아 안즈한테 말해둬야 하는데. 까지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필요할 때마다 신기하게 바로 나타나는 안즈에 의해 레오는 안즈가 몇 반인지 알지 못했다. 복도에 서서 레오는 잠시 고민을 하다. 망상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안즈가 나타나겠지 하고서는 그 문제에 관해서는 넘겨두기로 했다. 그것보다 편지를 어떻게 써야 할까 레오는 고민했다. 금방 망상으로 넘어가 버릴 고민이기 했지만. 일단은 큰 비중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걸 금방 잊어버리는 성격인데 어째선지 잘 기억하고 있으니 어찌 되었든 말을 할 수는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편지 어떻게 쓰더라?
언어에 대한 센스가 조금도 없다고 세나는 레오에게 곧잘 말했다. 레오 자신도 딱히 반박할 수는 없는 말이었다. 실제로 말이라는 건 언어라는 건 어려웠다. 표현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았다. 음으로는 이렇게나 넘치고 자유롭게 만들어지는데 언어로 표현한다는 건 어렵고 어려운 일이었다. 쉬울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츠키나가 레오한테는 어려운 건 분명했다. 안즈가 건네준 수첩을 펼쳐놓고서 아무 것도 적어내리지 못한 건 드문 일? 아니 거의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왜 편지가 쓰고 싶었지? 근본적인 의문이 떠올랐다.
“아아 정말, 나 바보!”
바보가 분명했다. 한 줄도 못 쓰고 텅 비어있는 수첩을 보니. 레오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머리를 헝클어트리다가 몸을 뒤로 젖혀 드러누웠다. 하늘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문득 다시 망상이 피어올랐다. 또 귀에만 들리는 망상이다. 갈색 목소리. 라고 레오는 그런 색깔의 목소리라고 안즈를 생각했다. 상냥하니까. 그리고 재밌으니까? 갈색? 그런 걸로 치자. 그럼 갈색 라디오의 갈색의 편지인 건가. 하늘은 여전히 파랬지만 귓가는 갈색이었다. 편지의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목소리가 나긋해서 예뻤다. 내용도 물론 안즈답게 따뜻할 것 같았다. 자연스레 미소가 그려지는 걸 보면 그랬다. 왜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아? 생각해보니까. 우주에는 지구의 전파가 잘 닿지 않는 모양임이 분명했다. 몸은 지구의 땅에 머물러 있지만 머릿속은 전부 우주에 남겨져 있으니까. 그래서 라디오로 어렴풋하게밖에 들리지 않는 거라고. 우주에서 지구까지 지구에서 우주까지 닿기 위해서는 얼마의 거리가 걸리던가.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상상조차 안 될 정도로 오래 걸리는 거리가 분명했다. 그 거리를 넘어 나에게 편지를 보내는 네게. 많은 감동을 했을지도. 그 드넓고 캄캄하고 반짝거리는 우주에서 혼자 유영하고 있었을 나에게 지구에 있어 오지 못하는 너는 말로서 라도 나에게 있어 주려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게 좋아서. 아마 그래서 편지를 쓰고 싶었던 거다. 우주에 잘 닿고 있다고. 잠시뿐일지라도 지구에 돌아가고 싶었다고. 네가 있는 지구에.
레오는 몸을 일으켜 바로 앉아 수첩을 들고 무엇을 적었다.
혼자서 널 우주에서 기다릴 때면.
여기서 네가 있는 곳까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
내게 좀 더 빨리 와줘.
여기서 두 팔 벌려 안아줄 준비가 돼 있어.
너와 나 사이의 우주를 건너.
날아 와줘.
잘 닿으려나? 안즈?
- 지구에서 보내는 편지
“세나 선배? 이걸 왜 저에게?”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세나를 멀뚱멀뚱하니 쳐다보는 안즈에 세나는 한숨을 깊게 쉬었다. 이 멍청한 왕이 또 남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멋대로 일을 떠맡겨 버린 게 눈에 훤해서. 세나는 자신의 앞에 있는 안즈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자초지종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자초지종이라고 할 것도 없이 세나의 짜증 섞인 짧은 상황설명이 전부였지만 안즈는 잘 들어주었다. 세나의 말이 끝나고 안즈는 당연하게 혹은 자연스럽게 세나의 손에 있던 편지를 받아갔다.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세나의 말에도 안즈는 웃으며 세나의 편지를 받았을 뿐이었다. 세나가 직접 레오에게 찾아가 준다고 하여도 받지 않을게 눈에 선했다. 안즈에게 맡겼잖아? 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할 레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걸 세나도 안즈도 잘 알고 있었다. 안즈는 딱히 갑작스러운 일에 놀라지 않았다. 그저 갑자기 웬 편지일까 이런 궁금증만 있을 뿐이었다.
생각보다도 빠른 편지 제출률에 안즈의 손에는 이미 네 개의 편지가 있었다. 남은 건 레오에게 전해주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어디 있을지는 왠지 모르게 짐작이 갔다. 어쩐지 모르게 있는 곳을 알 것 같았다. 무언가 통하고 있는 걸까? 라고 생각해봤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안즈 자신은 지구에 레오는 우주에 있었다. 둘 다 지구에 존재하고 있지만. 레오는 어딘가 한구석에는 이곳에 존재하고 있지 않은 듯이 멀게만 느껴졌다. 적어도 안즈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가까운 듯 보여도 한없이 오랜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길지 않은 시간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멀리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있는 그대로의 거리가 실제가 아니란 것도 알 수 있었다. 닿는 순간은 짧다. 닿기까지의 거리가 너무 길었다. 아 안쓰러울 만큼이나 길고 짧았다. 손이 닿는 순간은 이렇게도 짧은데. 닿기까지 오래도. 오래도 걸렸다. 실제로는 닿았는지도 모르는 일들이었다. 저 혼자서 닿았다고. 그래 혼자 닿은 것 뿐이리라. 그 순간마저도.
안즈는 걷다 들고 있던 편지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자기가 누구라고 알리기라도 하듯이 편지마저도 나이츠다웠다. 안즈는 즐겁게 웃다 씁쓸함을 느꼈다. 자신도 매일 편지를 쓰고 있었다. 언제부터 썼지도 생각이 나지 않을정도로 조금 오래 된 느낌이 들었다. 알게된 순간부터 썼을지도 모를일이었다. 바래고 바랜 편지를. 닿지 않는 편지를. 오랜 거리를 넘어 닿길 바라는 편지를. 지구에서 우주까지 얼마나 걸리던가. 가늠도 못 할 정도의 거리다. 그 거리를 건널 수가 없기에. 그래도 좁혀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가까운 곳에 있어도 닿지 않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도 아주 조금이라도 닿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그만둘 수가 없었다. 지구의 라디오가 우주에서 들린다면 라디오를 통해서 편지를 보내리라고 그런 마음들도 있었다. 그 라디오에서 자신은 편지를 읽을 것이다. 편지라고 하는 마음을. 읽는 편지가 아닌 듣는 편지인 편이 훨씬 닿을 가능성이 있었다. 홀로 우주를 떠다니고 있을 그즈음에 편지가 들리기를.
안즈가 걷는 걸음에서 반짝 말이 묻어나왔다.
저 멀리서 보고 있으면 다른 생각을 하는 듯합니다.
여기서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지.
궁금하고 답답하기만 하고.
그대가 없는 이곳은 너무 막막하고.
잡을 수 없는 손을 꼭 잡고 있는 손.
그대와 나 사이의 우주를 건너.
날아 와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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