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비해 가을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봄보다 좋은 날씨일지도 모를 계절이건만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특유의 느낌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건만 숨을 쉬는 공기는 상쾌하건만 초록이 져서 내려오는 빨강이 노랑이 두려웠다. 빨강의 단풍이 노란 은행이 익고 익어서 갈색이 되어 닳고 닳아서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견딜 수가 없었다. 우리도 혹시 이처럼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언젠가 우리도 이 낙엽처럼 바스라 저서 안타깝게 끝나버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 불안감을 가득 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미 겪어본 우리였을지도 모른다. 겪고 있는 우리일지도 몰랐다. 혼자 모른 척 하고 있는 계절이었을 수도 있다. 이별에 끝에서 나는 어떻게 너를 잡았어야 했나.
- 헤어질까요, 헤어져요, 헤어져야 했나
매번 끝에 오는 특별한 곳이 있다.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나란히도 길게 심어져 있어 바람이 불 때마다 내려오는 단풍잎과 은행잎이 길에 수없이도 깔려서는 레드카펫과도 같은 길이 늘어져 있다. 그 길을 너는 좋아했다. 내 손을 꼭 잡고서 잎이 가득 내려온 길을 사 박 소리를 내며 걷는데 그 얼굴이 산뜻한 미소를 그리고 있어 나도 모르게 그런 너를 넋 놓고 보다 자연스레 똑같이 미소를 짓는 그런 길이다. 한참을 손을 꼭 잡고 걷다 너는 어느 순간 내 손을 놓고서 저만치 혼자 뛰어 걸어가다 가을과도 닮은 그 갈색의 머리카락을 살랑거리며 나를 향해 뒤돌아본다. 얼굴에 미소를 띈 미소는 딱히 뭐라고 할 것도 없는 가을 같은 미소였다. 나는 자리에 멈춰 서서 나를 보고 있는 너를 본다. 단풍과 은행 가운데에서 가을인 너를. 입이 움직이고 조용한 가을이 말을 한다.
이즈미씨 저희 헤어질까요.
형태는 분명한 의문이었는데 너의 목소리는 헤어지자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말을 하는 너를 어떠한 얼굴로 표정으로 보고 있었던 걸까를 생각해보지만, 잘은 모르겠다. 나를 보고 있는 너에게 묻고 싶었지만, 무언가에 말이 막혀서 아니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에 말을 못했다. 얼굴은 태연했을지도 몰라도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절벽 끝에 서 있다 무너져 내리면 딱 이런 절망스러움이 느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러 번 반복된 말이지만 나는 여전히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마음 안고 씁쓸함을 품고 너는 정해진 절차처럼 나를 떠나겠다는 말을 건넨다.
아니 저희 헤어져요.
응 헤어져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헤어져야 하는 게 맞다 는 게 무슨 뜻인지 이제는 알고 있다. 처음에는 왜라는 의문이 제일 먼저였다. 왜 헤어져야 하는 게 맞는 건지. 여러 갖가지 이유가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그 어느 이유도 확실하게 맞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너를 제대로 보고 있었던 걸까. 너는 나를 보고 있었지만 나도 너를 보고 있었던 건지. 나를 보기에 앞을 보기에 바빠서 옆을 너를 제대로 보지 못했지 않았나를 되짚어 보았다. 지금에 와서는 언제나 기다려주는 너로 인해서 나는 안심해서 당연하게 나를 조금 더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의 균열을 알아챘으면 결말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무 대답이 없는 나를 보고서 처음의 그 모습처럼 고백했을 때의 모습처럼 얼굴을 조금 붉히고서 입을 연다.
이즈미씨 그동안 고마웠어요.
정말 많이 좋아했어요. 사랑했어요.
안녕히 잘 있어 주세요.
날은 쌀쌀했는데 마지막의 말이 따뜻함이 묻어나와 추하게 펑펑 울기라도 할 것 같았다. 차마 너를 볼 수가 없었다. 너는 이때 어떤 얼굴에 어떤 표정이었을까. 평소처럼 다정스레 웃고 있을까 봐 그런 너에게 모든 걸 다 버리고서라도 너를 붙잡을까 봐 그런 나에게. 그럴 리 없을 사람이란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네가 있을까. 고개를 숙이고 들 수가 없었다.
있죠 이즈미씨 제가 말 꺼내놓고 죄송하지만
먼저 가주시지 않을래요
저 잃어버린 게 있어서 찾아야 할 거 같아서요.
염치없지만 그래 주실래요
너의 말에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아무 말 없이 너를 보지 않고 뒤돌아 걸었다. 보고 싶은 너의 얼굴임에도 일그러진 얼굴을 차마 너에게 보일 순 없었다. 너처럼 덤덤하게 이별을 받아들이고 싶은 척을 해주고 싶었다. 그래야 너의 마음이 편할 것을 알기에. 나는 여기서 너를 두고 돌아섰다. 마음을 가지고 돌아섰다. 내리는 단풍이 은행이 전부 색이 바랬다. 지고 져서 낙엽이 되어버려 화려함이 무르익음이 아닌 쓸쓸함만이 자리한 듯했다. 레드카펫이 아니라 그저 차고 찬 낙엽이 밟히는 공허한 길이었다. 정말 이대로 헤어져야만 하는가를 수없이도 생각했지만, 발을 돌려 너에게 갈 수는 없었다. 가을의 쓸쓸함을 여실히도 실감했다.
며칠 뒤 나는 너의 사망소식을 듣게 되었다.
가을이 지독하게 쓸쓸함을 풍겼다.
- 너를 잡으면 가을이 끝이 달라지는가
쓸쓸함이 없어지기를 간절하게 기도했다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기를 얼마의 시간을 반복했을까. 어느 날 눈을 뜨니 시간이 되돌아 가 있었다. 잊을 수도 없는 그 날짜가 되돌아 왔다. 네가 살아있지만 나에게 마지막을 이야기 한 그 날이었다. 나는 너무 당연하게도 똑같이 행동해버렸고 너는 다시 또 나에게 마지막을 이야기했고 또다시 먼 곳으로 떠나갔다. 소식을 듣고 정확하게 일주일이 지나자 다시 가을로 돌아왔다. 무서웠다. 네가 살아있는 시간으로 돌아오는데 마지막의 말을 듣는 게 무서웠고 달리 행동해도 너를 살리지 못하면 어쩌나 무서웠다. 너를 구하지 못할 내가 떠올라 무서워 나는 몇 번이고 마지막에 여전히 너를 잡지 못했다.
몇 번이고 너는 마지막을 말하고 떠나갔지만 나는 너의 마지막 모습을 몰랐다.
다시 또 한 번 당연하게 가을이 찾아왔을 때 망설임의 끝에서 너를 잡기로 했다. 이번에 틀리더라도 또 너를 잃게 되더라도 내가 너를 구할 때까지 가을이 끝나지만 않기를. 나의 가을이 끝이 달라지기를 나는 간절하게 바랐다. 네가 떠나지 않기를 더 바랐다.
- 알 수 없는 가을의 끝에 우는 갈색
가을은 당연하게 다시 찾아왔고 가을의 절경 속에 너는 나에게 이별을 말한다. 이제야 너의 말에 하나하나씩 답해야 했을 말들을 해본다.
이즈미씨 저희 헤어질까요.
아니.
아니 저희 헤어져요
응 헤어져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왜 그게 맞는 건데.
이즈미씨 그동안 고마웠어요.
정말 많이 좋아했어요. 사랑했어요.
안녕히 잘 있어 주세요.
잘 못 있을 거야.
있죠 이즈미씨 제가 말 꺼내놓고 죄송하지만
먼저 가주시지 않을래요
저 잃어버린 게 있어서 찾아야 할 거 같아서요.
염치없지만 그래 주실래요
“먼저 안가.
잃어버린 게 뭔데 울고 있어
왜 얼굴에 눈물이 가득해 안즈.”
너의 마지막은 미소를 짓고 있음에도 눈물이 가득했다. 뒤돌지 않고 숙이고 있었던 추한 얼굴을 들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하고서 너를 보았다. 나는 떨어졌고 너는 흐르고 있었다. 동안 뒤돌아 가는 나의 모습을 보고 너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바라보았던 걸까. 너는 애써 미소를 짓고서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멍청하게 우는 얼굴로 너를 보았다. 매번 이렇게 서로의 눈에 보이지 않게 마지막을 눈물로 보냈던 지난 가을이 아팠다. 떨어져 있는 거리를 좁히기 위해 향해 걸었다. 가는 자국 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앞에 서자 눈가가 참으로 붉었다. 언제부터 울었던걸까. 아마 한참 전부터 나를 보내기로 마음 먹었을 때 부터 겠지 속으로 겉으로 눈물자국이 남겨져 있는 눈이 보였다.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안하고 있기에 손을 올려 볼을 감싸고 너의 눈가에 쓸었다. 눈물이 손가락을 타고 바닥을 적시고 땅으로 떨어졌다. 네가 눈을 감자 눈물이 더 흘렀다. 물기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안 가는 거 에요 이즈미씨?”
“네가 여기에 있으니까.”
“저희 헤어졌는데요.”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네 멋대로 헤어졌다느니 하면 가만 안 둘 테니까 말이야. 타당한 이유가 아니면 안 들어 줄 테니까.”
“.....이즈미씨는 왜 울어요?”
“하아?! 지금 그거 물어볼 때?”
대충 눈물을 거둬내고 있을 찰나에 나오는 엉뚱한 물음에 평소처럼 짜증을 내자 눈물을 가득 흘리면서도 너는 해맑게 웃었다. 그 모습에 마음이 아렸다. 나를 보내고서 이곳에서 얼마나 울었을지 모를 네가 아팠다. 남겨진 쓸쓸함에 미안함에 속으로 얼마나 더 울었고 그리워했을까를 생각해보아도 가늠이 안 되었다. 죽음의 끝자락에서 너는 마지막까지도 나를 생각했고 상냥했다. 혼자서 아픔을 삼켜내면서 눈에 나의 뒷모습을 보던 너의 심정은. 차마 상상조차 못할 마음 아픔 속에서 그런 너를 조심히 끌어안았다. 말에 눈물이 배어나올 것 같았다.
“좀 더 오빠를 의지해주라고 안즈.”
“충분히 의지하고 있어요.”
“너가 어디로 가던 어디든지 같이 가줄게.”
“알고 계셨어요?”
“왜 말 안 한 건데?”
“아시다시피 가망이 없으니까요 이즈미씨한테 상처 주기 싫었고.”
“헤어지자고 한 게 더 상처니까 그리고 가망 없다느니 하면 가는 동안 가만 안 둘 테니까.”
“같이 가주시려구요?”
“당연한 거 아니야?! 하아… 넌.”
“있죠 이즈미씨 저 혼자서도 괜찮아요. 진짜.”
“내가 안 괜찮아 같이 갈 거니까.”
“언제나 그렇네요. 이즈미씨 다정하네요.”
“하아?! 또 무슨 헛소리야 끝이라느니 하지 말고 너 반드시 살릴 테니까.”
아직 덜 걷힌 쓸쓸함이 휘감는 거 같았지만 믿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번이 안 되면 다시 온 가을에 나는 너를 잡고 살릴 거라고. 몇 번이고. 그때까지는 수 없이도 겪었을 쓸쓸함이 가득한 가을이 계속 되기를. 다시 이곳으로 같이 손잡고 올 수 있다고 누워 들어가는 너에게 그리 말해줄 수 있기를. 문득 너의 머리에 하얗고 작은 게 얹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쯤에는 같이 웃을 수 있을 테니.
- 다시 손잡고 걷는 마지막 가을
있죠 이즈미씨 저희 아직 사귀는 거 맞죠?
하아?! 잘 기억해 둬 안즈 인기모델이자 나이츠의 세나 이즈미가 애인이라고.
자..잘못했어요. 그렇게 웃는 거 무섭다구요.
잘못한 거 알았으면 이제 머릿속에 잘 기억해 놓는 게 좋을 거야 안즈.
.....이즈미씨 다시 여기 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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