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에서 방문을 열고 나온 안즈는 하품을 하면서 머리를 틀어 올렸다. 부스스하게 떠 있던 갈색 머리카락들이 하얀 손으로 한 대 모여 깔끔하게 올라갔다. 리츠는 방에서 비틀 거리면서 나오다가 머리에 올려져 드러난 새하얀 안즈의 목덜미를 보고 혀로 입술을 쓸었다. 아침부터 갈증이 나. 다 안즈 때문이야. 리츠는 거실의 미닫이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있는 안즈에게 다가가 어깨를 감싸고서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안즈는 익숙하다는 듯이 간지러운 웃음을 내며 리츠에게 말했다.
“목말라?”
“조금 안즈한테서 달콤한 냄새가 풍겨서.”
달콤한 냄새라. 리츠의 후각은 좀 더 다른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안즈는 어깨 언저리에 있는 리츠의 손을 잡고서 들어오는 햇빛에 가져다 댔다. 하얗고 길다. 햇빛에 닿으면 반짝거리면서 빛나. 안즈는 자신의 햇빛에 반짝거리는 리츠의 손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겹쳤다. 조금 부러울지도. 손이 더 길고 곧게 뻗으면 좋을 텐데. 그러면 리츠의 손끝에 닿을지도. 안즈는 좀 더 길어지라는 듯이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리츠는 어느새 고개를 들어 안즈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길어지라면서 손을 꼬물꼬물하는 안즈를 보다가 리츠는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안즈는 정말 귀여워. 리츠는 안즈가 햇빛에 가져다 댄 손으로 꼬물거리는 안즈의 작은 손 위에 덮고서 깍지를 꼈다.
“작은 채로 인게 좋아. 내 손에 들어올 이 정도가 좋아.”
리츠의 말에 안즈는 놀라 하며 뒤를 돌아 리츠를 바라보았다. 그 바람에 깍지를 낀 손이 풀리자 리츠가 다시 안즈의 손을 잡았다. 리츠의 얼굴은 표정이 부드럽게도 풀려 미소를 짓고 있었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머리카락이 한 몫을 더 했다. 안즈는 약간 넋을 놓고서 미소 짓고 있는 리츠를 바라보았다. 한 폭의 그림 같아. 말도 예쁘게 하고 얼굴도 예쁘고. 아. 새삼 또 반해 버렸다는 게 맞을지도 몰라. 치사하네. 안즈는 그런 생각을 하며 리츠의 손에 잡힌 자신의 손을 빼내고서 햇빛에 반짝거리는 리츠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사라악 거리면서 안즈의 손에 흩어졌다.
리츠는 손에서 빠져나간 안즈의 손의 공간이 허전했다. 계속 잡고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아쉬운 생각을 했다. 쉽게 떨어지는 건 너무나 싫어. 계속 잡고 있으면 안 되는 걸까? 리츠는 속으로 말을 굴리면서 안즈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안즈는 잠시 멈칫하다가 리츠의 등을 쓸어내리며 토닥였다.
“힘들어?”
“으응 아니야.”
그저. 네가 나에게서 너무 쉽게 빠져나가서. 그게 조금 불안해져서. 리츠는 입 밖에 내지 않고서 그저 토닥임을 받으며 안즈의 어깨에 얼굴을 부비적댔다. 이대로 시간이 멈출 수는 없을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하면서. 한동안 리츠는 안즈에게 어리광을 피웠다.
안즈는 그런 리츠를 잘 알고 있었다. 같이 지낸 지 꽤 시간이 흘렀으니 습관이나 버릇 같은 것을 안즈를 잘 알고 있었다. 리츠는 왠지 불안해 질 때면 어느 샌가 저에게 기대곤 하였다. 그래야 안심이 되는 걸까. 안즈는 리츠를 토닥이며 그런 생각을 하다가. 토닥임을 멈추고서 제 어깨에서 리츠를 밀어낸 후 자신의 정면에 보이게 리츠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 어린 붉은 눈동자에 안즈는 생긋하니 웃어 보였다.
“리츠 괜찮아 나는 여기 있어. 그러니까.”
리츠는 안즈의 말에 약간 놀라 하다 이내 안즈를 따라 눈을 살짝 접어 웃어보였다.
“응 알아 안즈는 여기 있어.”
리츠의 표정과 말에 안즈는 안심한 듯이 한숨을 쉬었다. 이러 저래 이럴 때마다 안즈는 리츠가 예전처럼 돌아갈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도 불안했을지도. 안즈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부엌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한 시름 놓았으니 아침을 먹어야지. 안즈가 부엌으로 발걸음을 떼려고 하자 뒤쪽에서 리츠가 안즈의 손을 잡아당겼다. 반동으로 인해 안즈는 리츠의 품에 쏘옥 안겼다. 안즈는 당황한 얼굴을 하며 품에 안겨 있었고 리츠는 약간의 고개를 숙여 품 안에 있는 안즈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 가려고?”
“에. 부엌에 아침 먹으려고.”
리츠는 안즈의 대답에 아. 하면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다 무슨 좋은 생각이 났는지 붉은 눈동자를 빛내면서 씨익 웃으며 안즈를 자신의 품에서 일으켜 손을 잡고서 부엌으로 이끌면서 안즈를 쳐다보고서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요리해줄게.”
리츠의 말에 안즈의 표정이 순간 굳어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부엌에 들어오자마자 리츠는 냉장고를 뒤지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지만 안즈는 심각한 얼굴을 하며 리츠의 행동을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리츠의 요리 실력을 안즈는 잘 알고 있었다. 정말 뼈저리게도 잘 알고 있었다. 맛은 분명하게 있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모양새가 문제였다. 외모로는 천생 곱디고운 것만 만들 것만 같은 아이가. 지옥에서 만들어서 왔는지 모양새가 참으로 그로테스크했다. 안즈는 레오가 탈주해 있던 시절 나이츠와 함께 스위츠를 만들던 때를 떠올렸다. 그건 그 스위츠들은 아무리 빈말로라도 먹을 만한 비주얼이 아니었다. 그랬다. 그때와 지금 다른 점은 리츠와의 관계에 있겠지만 제가 사랑하는 리츠라고 해도 그 음식들을 보면 도저히 맛있게 먹겠다는 소리는 웃으면서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아 어떡하면 좋을까. 안즈는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안즈가 서서 이 사태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무렵 리츠는 냉장고 안에서 전혀 연관성이 없는 갖가지 재료들을 몽땅 꺼내 작업대에 올려놓았다. 리츠는 재료들을 모아 놓고 앞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무엇을 만들지에 대해 생각했다. 밥은 있던 것 같은데. 볶음밥 해볼까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리츠는 빠르게 실행에 옮겼다. 부엌 한쪽에 걸려 있는 앞치마를 매고서 도마와 칼을 꺼내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일단 기본적인 볶음밥의 만드는 방법은 야채를 잘게 다져 볶은 다음 밥을 넣고 간을 해 볶은 다음 볶아놓은 야채들과 한 번 더 볶아주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리츠는 대체 영문을 알 수 없는 딸기를 칼로 다지기 시작했다. 늘어진 딸기 옆으로 더 영문을 알 수 없는 문어와 초콜릿이 놓여 있었다.
칼질 소리가 나자 안즈는 화들짝 놀라며 열심히 다지고 있는 리츠의 뒷모습을 보았다. 확실히 앞치마를 매고 무언가를 다지고 있는 리츠의 뒷모습은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그렇지만 리츠가 다지고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절대 야채 다지는 소리가 아니라고 안즈는 확신했다. 안즈는 긴장하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리츠는 무엇인가를 다지다 말고 뒤를 돌아 안즈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딸기의 과즙이 뚝 뚝 떨어지는 칼을 들고서.
“조금만 기다려.”
안즈는 리츠를 향해 멋쩍게 따라 웃었다. 리츠는 그 미소가 좋았는지 더 열심히 무언가를 다지기 시작했다. 리츠가 다시 뒤돌아서 요리를 시작하자 안즈는 머리를 재빠르게 굴렸다. 저게 대체 뭐지. 방금 칼에서 대체 뭐가 흐른거지? 무엇을 하고 있는 거야. 리츠가 요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야 예쁘지만 그 결과물이 좋지 않으니. 아. 이대로 가다간. 정말 또 지옥에서 나온듯한 음식을 먹어야 할지도. 저렇게 해맑게 웃으면서 저에게 줄 요리를 하는 아이를 어떻게 그만 하라고 말 할 수가 있겠는가. 안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리츠의 뒷모습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안즈는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는지 리츠를 향해 다가갔다. 리츠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보이는 재료들에 안즈는 도저히 맘 놓고 웃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살짝 고개를 들어 리츠의 얼굴을 보면 즐거워 보였다. 요리하는 모습의 리츠는 사랑스럽긴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안즈는 합리화시키기로 했다. 굳게 다짐을 하고서 안즈는 리츠의 뒤로 다가가 리츠를 조심스레 안았다.
“리츠 뭐 만들어?”
“볶음밥.”
리츠는 뒤에서 백허그를 해오는 안즈에 약간 놀라 살짝 움찔했다. 저가 한 적은 많아도 안즈는 해온 적이 거의 없었기에 뒤에서 느껴지는 안즈의 조그마한 숨소리가 간지러웠다. 안즈도 이런 기분일까? 리츠는 초콜릿의 봉지를 뜯으면서 생각했다.
볶음밥에 초콜릿이 들어가던가? 리츠가 초콜릿 봉지를 뜯는 것을 보며 안즈는 아 이건 말려야 한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안즈는 작게 한숨을 쉬며 리츠의 허리를 꼭 껴안고서 등에 머리를 기댔다.
“리츠 마음은 너무 고마운데 여기서부터는 내가 해도 될까? 물론 리츠가 해준 음식을 먹고 싶지만 분명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까. 그러니까 응?”
등 뒤에서 속삭이는 안즈에 리츠는 들었던 칼을 내려놓고서 안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긋나긋한 상냥한 목소리. 안즈의 목소리에 리츠는 자그맣게 미소를 지었다. 안즈의 목소리에 잠에 들고 싶어. 리츠는 다시금 잠에 빠지는 순간을 생각 했다. 아침 같은 거 먹지 않고 계속 해서 안즈랑 자면 좋을 텐데. 리츠는 자신의 허리를 꼭 껴안은 안즈의 팔을 붙잡고 부엌에서 걸음을 옮겼다. 안즈가 당황한 소리가 들렸지만 리츠는 개의치 않고 안즈의 팔을 꼭 붙잡고서 거실의 소파로 향했다. 그리고선 안즈의 팔을 풀어 안즈를 소파에 앉히고서는 자신은 안즈의 무릎을 베고서 소파에 누웠다.
“리츠?”
“아침 같은 거 안 먹어도 되지?”
리츠는 감았던 눈을 떠 안즈의 갈색 눈을 바라보았다. 조금 졸림이 드리운 목소리로 리츠는 말했다.
“있지 조금 더 같이 자자.”
나른해 보이는 리츠의 목소리에 안즈는 멀뚱하게 리츠의 얼굴을 바로다가 살포시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까까지 열심히 요리하려던 사람이 맞는지. 참 리츠답다 싶었다. 응? 하면서 재촉하는 리츠의 말에 안즈는 웃음기를 달고서 말했다.
“그래. 조금 더 자자.”
안즈의 대답이 맘에 들었는지 리츠의 미소를 달고 눈을 감았다. 안즈는 눈을 감은 리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눈을 감았다. 아까 열어놓은 미닫이문에서 따스한 햇볕과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리츠가 말하는 기분 좋게 잠들 수 있는 적당한 날씨 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즈가 고개를 숙이며 꾸벅꾸벅 졸다 잠에 들자 리츠는 살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서는 안즈가 깨지 않게 안즈의 무릎에서 일어나 안즈의 옆에 앉았다. 리츠는 아래로 점점 숙여지는 안즈의 고개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하고서는 기분 좋게 웃으며 자신도 안즈에게 기대 눈을 감았다.
새근새근 잠든 두 사람의 숨소리가 고르게 화음을 맞추고 있었다.
둘의 아침은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이상한 부분은 자주자주 수정하러 올 예정입니다 볼때마다 틀려질 수 있어요.
*어째 점점 길어지는 것 같지만 개의치 않도록 합시다.
*그 고운 얼굴로 그로테스크한 것을 만들어내는 리츠의 갭이란..
*안즈도 그 그로테스크함은 무서워할것이라 생각합니다.
*리츠안즈 마니 많이 사랑해라
*문의는 트위터(@pogeun_anzu)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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