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마음으로 같은 생각으로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슬이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약간의 찬기가 있을 푸름이 하늘에 머무르고 있는 때에 조심히 집을 나선다. 현관문을 닫고 나오자 따뜻했던 집 안 공기와는 다른 찬 공기가 온 몸을 감싸는 기분에 잠시 몸을 부르르르 떨려 손으로 양 팔뚝을 쓸어내렸다. 싸늘한 공기에도 졸린 기분에 아직 온기가 약하게 있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착착 두드렸다. 약간 몽롱했던 기운이 사라지고 말끔해지는 기분으로 미소를 지으며 사뿐히 걸음을 떼고 대문을 나서면서 조그맣게 집에 인사를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아직 해가 채 모든 곳에 다 닿지 않을 즘에는 모든 게 조용하다. 인부들이 한 낮에 땀을 흘리면서 공들여서 깔아놓은 보도블록도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가로수 까지도 아직은 모두 잠에 들어 있을 시간이라 사이에 밤새 내린 차가움을 가득 머금고 있다. 조금 있으면 맑은 해가 떠 빈틈 사이사이 마다 따뜻함을 비춰주겠지 그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마 그 따뜻함에 너는 오다가 잠시 하품을 하면서 눈을 감을지도 모르겠다. 너는 따뜻함을 안을 줄 아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이 길을 걸어올 너를 생각하니 살그머니 웃음이 새어나왔다.
번화가로 넘어가기 전 나오는 작은 신사에 들렀다. 동전을 하나 조심히 새전함 안으로 넣고 아주 살짝 흔든 다음 계단에서 내려와 몇 발자국 떨어진 뒤에 손을 두 번 착착 마주한 뒤 하나를 빌었다. 조금 간절하게도 꼭 들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는 빌었다. 오늘도 너의 하루가 평온하기를. 아무것도 없이 그저 유유히 저 구름처럼 흘러가기를. 편히 나른히 잠들 수 있도록. 나는 너를 위해 신에게 기도를 드렸다. 네가 바라는 평온한 일상이 깨지지 않고 지켜지기를.
상점가는 조금씩 깨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 모습은 마치 움트는 새싹 같기도 하다. 여기저기서 문을 열고 하루를 시작하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아직 잠들어 있는 곳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하루를 시작하는 각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물건을 정리하는 떠들썩한 소리. 매일 만나지만 할 말은 여전히 넘쳐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 달콤한 빵 냄새. 향긋한 꽃 냄새. 갓 내린 따뜻한 커피 향 까지. 이제 조금씩 해를 받아 모든 모습들은 조금 더 활기찬 모습이다. 너의 하루 시작은 어떨까? 아직 침대에서 잠에 빠져 있을까? 아 아마도 꿈을 꾸고 있을 것 같아. 그리고 그 깊은 꿈속에서도 또 잠을 자고 있을 것 같은 너의 모습에 괜스레 즐거워졌다. 꿈속에서 조차 너는 너 일 테니까. 뭐든 할 수 있을 그 안에서도 너는 가만히 누워 잠을 청하겠지. 오히려 잠자기 좋게 침대 하나를 만들어내고 적당한 햇빛과 바람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그냥 그럴 것 같아.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학교 교문이 눈에 선히 보일만큼의 거리에서 멈춰 섰다. 그 자리에서 한 발짝 떨어졌다. 교문을 코앞에 두고도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았다. 학교까지 오는 길은 너무 짧아. 걷는 내내 모든 것을 느끼고 너로 채워도 그 생각에 젖어 행복해서 이리 짧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행복은 짧은 순간이라고들 하니까. 좀 더 너와 걷고 싶다. 아쉬움에 제 자리에 한 발 한 발 돌다가 이미 맑음을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 오늘도 네가 좋아하는 날씨 인 것 같아. 잠들기 좋은 따스하고 선선한 그런 날씨. 오는 길에 네가 기분이 좋게 잠들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을 만큼 좋은 날씨여서. 무심코 아쉬운 것도 있고 말갛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 ‘눈으로 너를 기억하고 머리로 너를 그려내고’
아직 운동부도 연습에 나오지 않은 이른 시간에 이미 익숙해진 수위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학교 안으로 들어섰다. 매번 느끼지만 울렁거리기도 하는 것 같은 이 마음은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는 것 같다. 사람이 많은 떠들썩한 학교와는 달리 아무도 없는 학교는 묘한 기분을 주어서 마법에 걸린 것 같은 기분에 빠지게도 하며 다른 차원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교실까지 걸어가는 순간은 조금 천천히 걷는다. 원래 걸음이 빠르지만. 걸음이 약간 느긋한 너와 한 발이라도 맞춰볼까? 하는 마음으로. 이 정도 쯤? 아니면 좀 더 느긋할까? 가끔 멀리서 보이는 복도에서의 너를 떠올리며. 네가 한 걸음 걸을 때 나도 한 걸음. 어느 적당 거리를 유지하는 이 복도위의 너와 나를 떠올리며. 간혹 옆에 걸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상상만으로도 조금 심장이 빨리 뛰어서 숨도 못 쉴 것만 같은 느낌이다.
얼굴이 빨개진 채로 고개를 들지도 너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아마 보폭 맞추기에 바쁠 것 같은 내 모습에 잠시 창피해 졌다. 아마 너의 옆에서 걷는 다 하여도 말 한마디도 못 꺼낼 자신이 바보 같았다. 사랑 앞에선 누구나 바보가 된다지만. 바보 같은 짓은 하고 싶지 않은 게 마음이다. 생각만으로도 이렇게 창피해지는데 너의 앞에서면 얼마나 바보가 될지 바보 같은 짓만 할지. 좀 더 잘 보이고 싶은데. 하는 생각만 늘어가고 복도위에서 한참을 한숨만 푹푹 쉬었다.
-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보다 눈부신 너의 모습에’
‘잠들어 있는 그 미소를 보는 게 좋아서’
‘한참을 바라만 보다가 아름다워 울 것 같았다.’
텅 빈 교실은 아무도 없는 교실과는 다르다. 묘한 느낌을 주는 건 매한가지지만 교실은 쓸쓸한 느낌을 준다. 굳게 닫혀 있는 유리창을 통해 햇빛이 비춰도 고적한 느낌을 준다. 막 올라온 해의 햇빛이 유리창에서 쏟아져 교실의 빈 공간을 채우고 있지만 그 광경마저도 외로워 보이는 건마저 채울 수 없는 짙은 곳이 있기에. 빛이 닿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게 조금 슬퍼져서 나도 모르게 어둠이 깔린 벽을 위로하듯이 쓰다듬었다. 외로워 하지마라. 쓸쓸해 하지마라. 그저 새벽동안의 슬픔일 뿐이야. 낮 동안 수많은 빛이 쏟아져 너를 감싸줄테니. 그리 외로워하지 말라고. 닿지 않아도 슬퍼하지 말라고. 닿는 순간이 분명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웃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나에게 위로를 건네듯 교실의 한 구석에 위로를 건넸다.
창가에서의 두 번째 줄에서 세 번째 자리. 가만히 가방을 놓고 자리에 앉아 엎드려 옆 자리를 바라보았다. 너의 모습을 제일 잘 볼 수 있는. 제일 좋아하는 나의 자리. 자습 시간 중 간혹 이렇게 엎드려 옆을 바라보면 세상 편안하게 잠든 네가 바로 마주 보일 때가 있다. 그 예쁜 모습에 화악 하고 달아올라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순간 작게 내쉬는 너의 숨소리가 들릴 때도 있어. 혼자 얼굴이 빨개지며 조그맣게 웃는 나를. 너는 알까. 이렇게 웃다가 살짝 눈 뜬 너와 마주쳤으면 좋겠어. 텅 빈 너의 자리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밖은 해가 한참이지만 아이들이 오기 까지는 아직 시간은 많다. 빗자루를 들어 교실 구석을 싹 쓸어 청소하고 걸레를 꺼내들어 창문을 닦기 시작했다. 간혹 가다 졸면서 머리를 창문에 기대는 너를 생각하면서 얼룩진 흔적까지 닦아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창문을 닦았다. 집안일이라도 끝낸 것 같은 피곤함에 손으로 허리를 톡톡 두들기며 깨끗해진 창문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햇빛도 좀 더 반짝 거리는 느낌이었다. 걸레를 빨고 돌아와 창문을 하나하나 열어 환기시키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다 열다. 마지막으로 아직 열지 않은 창문이 있는 너의 자리에 반 무릎을 꿇었다. 의자에 무릎을 댄 순간 스며들어오는 냉기에 몸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찌릿 몸을 타고 올라오는 찬기에 눈을 감고 잠시 부르르 떨다가 조심스레 창문을 열었다. 여는 순간 살랑 하고 들어오는 첫 바람이 기분이 좋았다. 이제 해가 다 떠 찬기보다는 따뜻함을 품고 있는 바람이 기분 좋게 불고 있었다. 연하게 부는 바람처럼 따뜻한 바람이 교실 안을 가득 메웠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작게 흔들거려 옷자락을 스쳐 사락거렸다. 아 기분 좋다. 마치 너를 닮은 바람이야. 나도 모르는새 어느샌가 나의 입가에 미소를 걸치게 하는 너를 참 많이도 닮았다. 왠지 지금 당장이라도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왜 자신의 자리에서 잠자는 걸 좋아하는지 매일 깨닫고 있어. 창문의 턱에 손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 아 정말 당장이라도 잠들 것 같아서 네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
지금 너와 같은 시선 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항상 매만지는 너의 자리에서 너의 의자에 무릎을 대고 햇살과 바람을 맞자니. 눈을 감은 그 속에서 아주 선명하게도 너의 잠든 모습이 떠올랐다. 간혹 수업 중 바람이 불어와 고개를 돌리면 바람에 머리카락과 셔츠 자락이 살랑이고 너는 왼쪽 팔로 턱을 괴고 눈을 감고 있었는데. 햇빛에 반짝여 그 모습이 아름답게 빛나 나는 조금 울컥 했었다. 눈을 뜬 나는 눈가에 살짝 눈물이 고였다. 아름답네. 너는.
- ‘오래도록 혼자 사랑한 마음은’
‘그저 말 한마디에 세상을 다 가진 어린 아이’
‘아이야, 아이야 괜찮니’
‘희미하게 웃는 얼굴이 아팠다’
시간은 느리게도 흘러간다. 네가 없는 시간은 온통 느리게 흘러간다. 시계 초침이 멈추기라도 한 냥 시간은 걷지를 않는 듯해서. 그렇게 멈춘 시간을 나는 너를 적어내리기로 했다. 가방에서 꺼낸 평범한 하얀색 공책. 공책의 끄트머리가 살짝 까져 있어 엄지로 그 부분을 여러 번 쓸어내리다. 조심스레 공책을 펼쳤다. 펼친 그 속에서 기록된 순간의 너의 모습들. 대부분이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지만. 뒤쪽으로 펄럭이며 넘기다 보면 눈을 살짝 접으며 미소를 지으면서 웃고 있는 너의 모습이 한 페이지가 담아져 있다. 선명하게도 적어진 날짜와 마음들이 꾹 눌러 담아져 있어. 그 눌러 담긴 것들을 손으로 여러 번 따라 기억했다. 머리로는 너를 그려내며. 그때 난 너의 모습을 보고서 한 달음에 화장실로 달려가 수 없이 찬 물로 얼굴을 씻어냈어. 소매가 젖어가도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씻어내기를 멈추지 않았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창피해서. 그보다 더 마음이 너무 크다는 걸 알게 돼서. 넘쳐서 흘러나올까봐 여러 번 마음을 삼켰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단것과 씁쓸한 것’
아이들이 듬성하니 와서 교실이 소리로 채워져 갔다. 반갑게 인사하고 떠들고 웃고 있는 와중에도 눈길이 문 쪽으로 향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마치 토끼라도 된 마냥 멀리서 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사람처럼. 온 신경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친구의 이야기에 대충 장단을 맞춰주고 웃어주고. 그러다 귀에 들려오는 너의 목소리에 황급하게 눈길을 슬그머니 돌린다.
안녕 타나카. 건네지 못한 인사는 입에 까슬하게 남아 굴러 다녔다.
친구들의 반김을 대충 받고 자리에 가방을 놓고 앉자마자 너는 팔을 책상 걸치고 서서히 고개를 파묻는다. 서서히 파묻기 전에 크게 하품을 하고 너는 나른함 빠졌다. 아 잠들었다. 새근새근 숨 쉬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려왔다. 자는 숨소리가 듣기 좋아. 친구들에게 대충 말을 하고 책상에 엎드려 고개를 돌렸다. 잘 자는 너의 모습이 예뻤다. 들려오는 숨소리는 사랑스러웠다. 눈앞에 보이는 너에 행복해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눈을 감고서 행복함에 약간 노래도 부른 것도 같다.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사람을 웃을 수 있게 해. 너는.
- ‘손끝이 닿기를 한 마디를 듣기를’
‘불러주는 음성에 울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웃는 거 처음 보는데.”
고즈넉하게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긴 시간동안 혼자서 들어왔던 이 목소리는.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 엎드린 채 마주한 너와 눈이 맞은 지금. 잠시 세상이 멈춘 것 같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서서히 몸을 일으켜 볼을 꼬집고 너를 봐도 너는 지금 나를 보고 있었다. 볼을 꼬집는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면서 너도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신데렐라의 마법이 끝나는 것 같은 시작의 종소리가 울렸다. 이제 막 시작한 마법 이었는데 아 하며 탄식을 내뱉었다. 너도. 나도. 말 한마디 못 꺼낸 게 아쉬웠다. 처음이었다. 나를 향해 너의 목소리가 울린 게. 다시 한 번 더 없을 마법이었어. 입에 넣으면 사라지는 솜사탕같이 너무 달콤한 마법이었어. 눈물이 똑 떨어질 것 같았다.
“잘 웃는 구나 한 번도 본적이 없어서 신기했어. 아 좋은 아침이야.”
다시 한 번 들린 너의 목소리에 단박에 고개를 돌렸다. 너는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너를 보았다.
나른함이 뚝뚝 묻어나는데도 또박 하니 고즈넉한 그 목소리는 내가 좋아하는 그 목소리는 나를 향해 울리고 있었다. 아. 정말로. 네가. 나를 향해. 말을 하고 있어. 목소리 하나에 온 마음이 떨려서 건네려는 목소리에도 눈가에도 마음이 흐를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예쁜 웃음으로 너에게 웃어 보이며 아침 인사를 건넸다. 울고 있진 않았기를. 인사를 건넨 내 얼굴이 환하게 기억되기를 바랐다.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응, 좋은 아침이야 타나카.
- ‘햇살이 내리는 아래에서’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이상한 부분은 자주자주 수정하러 올예정입니다. 볼때마다 틀려질수도 있어요
*타나카는 다정한 사람이니까...라는 생각입니다.
*타나카군 같이 파주세요!! 타나카가 너무 보고 싶다고 한다
*딱히 화자가 없는 이유는 그냥 짝사랑하는 아이를 쓰고 싶었어요
그냥 아무나 좋아하는 방식으로 생각하는게 좋아서 그렇게 쓴걸지도 몰라요
*문의가 있으시면 트위터 (@pogeun_anzu)로 부탁드립니다
*타나카군 흥했으면 좋겠습니다!!